빠른 판단, 빠른 이탈
조금만 질리면 바꿔버리는 습관이 있다. 처음에는 이 습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판단력, 유연한 대처처럼 보였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싫증이나 지루함을 느끼면 주저 없이 방향을 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똑똑하고 능동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어떤 일에도 깊이 들어가지 못한 채, 표면만 스쳐 지나간다는 느낌이 자꾸 남았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초반을 지나면, 어김없이 권태가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것을 찾아 떠났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경험은 얻었지만, 쌓였어야 할 무언가는 쌓이지 않았다.
참지 않는 습관의 그림자
조금만 질리면 바꿔버리는 습관은, 결국 ‘참지 않는 습관’이다.
불편을 참지 않고, 지루함을 견디지 않고, 깊이에 다다르기도 전에 다른 길을 찾아버린다. 다양한 경험은 생겼지만, 진득하게 이어간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질림을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성장의 신호이기도 하다. 문제는 질림을 느낄 때마다 너무 쉽게 ‘포기’를 선택해버리는 나의 반응이었다. 매번 새로움을 찾아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것에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질림을 신호로 읽는 법
질림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왜 질렸을까?“다.
단순한 감정인지, 성장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방법만 조금 바꿔도 다시 흥미를 찾을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조건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 그 질문 하나로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작은 기준을 스스로 세워두는 것도 필요하다.
“질려도 최소 한 달은 해본다”, “권태를 느껴도 1주일은 더 견뎌본다.”
이런 식의 기준은 쉽게 무너지던 나를 조금은 붙잡아줄 것이다.
익숙함 속의 가치를 보는 연습
모든 것이 끝없이 재미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반복되면 권태가 오고, 아무리 원하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이 순간을 무조건 “끝났다”고 단정하는 대신,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진짜 성장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권태가 찾아왔을 때,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만이 더 깊은 만족을 알게 된다. 조금만 질리면 바꿔버리는 삶은 얇고 빠르지만, 견뎌내고 이어가는 삶은 단단하고 오래 남는다.
얇게가 아니라 깊게
얇게 넓히는 것은 쉽다. 얕은 경험은 빠르게 쌓인다. 하지만 얇게만 쌓인 경험은 쉽게 흩어진다.
반면, 약간의 질림을 견디고, 권태를 끌어안으며 쌓은 시간들은 내 안에 단단한 토대를 만든다. 이제는 얇고 넓게가 아니라, 얇고 깊게 나아가고 싶다.
지루함은 앞으로도 찾아올 것이다. 싫증도, 권태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 순간을 무조건 회피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묻고 싶다.
“정말 끝까지 해봤는가?”
“바꿀 게 아니라, 바꾸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가?”
조금 질리더라도 쌓아가는 삶
조금만 질리면 바꿔버리는 삶은 어느 순간 가벼워진다.
그 대신, 조금 질리더라도 참고, 조금 지겨워도 이어가며 쌓아가는 삶.
그 삶은 처음에는 무겁고 느릴지 몰라도, 결국 내게 가장 단단한 것을 남겨줄 것이다.
나는 이제, 질림을 핑계로 다시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조금 질리더라도, 조금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가보는 삶을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