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하루가 길고, 또 어떤 날은 인생이 길게 느껴진다. 물론 둘 다 길게 느껴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살아가되, 그 전체를 이루는 인생은 되는대로 흘러가도록 두겠다는 이 말에는 삶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어쩌면 삶 자체가 원래 아이러니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제목처럼, 완벽한 하루란 무언가를 새롭게 더하기보다, 이미 가진 일상을 지키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데서 온다. 그렇게 단순화된 하루야말로 오히려 충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완벽한 하루를 방해하는 것들은 늘 뻔하다. 전날 밤 과음으로 인한 노곤함,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먹은 야식, 졸린다는 이유로 늘어진 낮잠, 잠이 오지 않는다며 새벽까지 깨어 있는 습관 등이 그렇다. 이런 즉각적 쾌락들은 결국 불편함과 후회를 초래하는데, 이는 삶의 작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당장은 행복을 위해 선택했지만, 그 결과가 오히려 행복을 가로막게 되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기, 책 읽기, 운동하기 등은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는 대표적인 행동들이지만, 반대로 과음·야식·늦잠·밤샘 같은 습관들을 피하는 것 또한 충분히 ‘성실한 하루’로 인정받을 만하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는 삶은, 무언가를 계속 더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시대에선 좀처럼 인정받기 어렵지만, 과음을 하지 않거나 늦잠 자지 않는 선택들은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미래의 ‘나’까지 존중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결국, 인생이 길든 하루가 길든,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러니를 인정하고, 오늘 하루를 최대한 성실하게 보내려 노력하면서도, 삶 전체가 보여줄 또 다른 ‘되는대로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