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느낀 점은 실력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엄청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뒤처진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만큼 시간을 쏟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보완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건 의문이 들 때 쉽게 넘어가지 않는 태도였다. 이 태도는 여러 조건이 부합해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일단 의문 자체가 들어야 하고, 그 의문을 받아줄 수 있는 조직에 속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의문을 제기했다고 ‘그럼 네가 해봐’,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식의 피드백을 받으면 더 이상 조직 내에서 의문은 자라지 못한다. 직급이나 연차가 쌓일 수록 좋은 의문을 던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머지 어두운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그런 부분은 이제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나 평소 궁금한 게 많은 사람들에게 걷히곤 한다.
과거 SW 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선임이 와서 실험실에서 실험이 제대로 안 된다고 나를 불렀다. 그때 실험실에는 석박사 출신의 수석 연구원들이 와있던 터라 ‘내가 왜 필요할까?’ 싶었다. 그래도 선임이 불렀으니 마지못해 실험실로 가보니 모두가 실험을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전원이 꽂히지 않은 전원코드였다. ‘이거 전원코드가 안 꽂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니 그제야 실험하던 사람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당연히 꽂혀 있는 줄 알고 그 이후의 단계에서 원인을 찾고 있던 것이다. 만약 거기서 누군가 ‘막내급 되는 애를 부른다고 뭘 알까?’라는 생각에 나를 더 늦게 불렀다면 거기 참석한 사람의 시간을 더 많이 허비했을 것이다.
요즘도 회의를 하거나 컨설팅을 할 때 ‘OO 님 생각은 어때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편이다. 그럴 때 대답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어떤 사람은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식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이것 같은데 맞나요?’ 식으로 확인받으려고 한다. 전자는 질문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들고, 후자는 눈치 급수만 점점 올라간다. 아는 게 많아서 대답을 잘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게 많아도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좋다. 사람은 아는 만큼 성장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만큼 성장한다.
실력이 없어도 의문이 많다면 질문하는 만큼 실력이 성장한다. 반면 처음엔 실력이 있어도 질문이 아닌 시간으로 채운 사람들은 성장하지 못하거나 아주 느리게 성장한다. 계급장 떼고 공동의 발전을 위해 아주 피 터지게 질문하는 조직을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