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시대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워야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TV에서 본 트로트 가수의 공연도 온라인 수강신청으로 단련된 자식들의 예매 도움 없이는 언감생심 구경도 못하니, 불리한 환경은 서운한 마음으로 연장됩니다. 기차 역사에서 친절한 역무원을 만나도 이미 팔린 표를 구해줄 방도는 없습니다.p.11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예전에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민원서류는 구청에서, 공과금 고지서는 은행에서 처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수업 시간 선생님께 여쭤보았고 전셋집이 기한을 다하면 복덕방 할아버지께 도움을 구했습니다.p.12
삶이 풍요로워지고 더욱 복잡해지며 우리의 기대는 상승하게 됩니다. 다 같이 봄 여름 가을 노동하고 농한기에 효도 여행을 함께하던 단선적 삶에서 K대리와 P과장이 각자 스코틀랜드와 베트남으로 휴가를 가는, 선택지가 늘어난 다채로운 삶으로 분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해진 삶에서 누군가가 모든 분야의 권위를 갖기는 어렵습니다. 현명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로의 분산 처리를 통해 권위자의 아웃소싱을 도모합니다.p.13
‘내가 그걸 써봤더니 좋더라’하는 글에 제품의 이름까지 들어가면 나의 호기심은 확신으로 변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글을 쓴 사람도 왜 좋은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입니다. ‘그냥 써보니까 좋더라’ 수준일 수 있고, 그 확신의 출발점을 파고들어가 보면 그 역시도 누구한테 이야기를 들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가 들은 이야기의 출발점이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이라면 그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연결고리처럼 어느 누구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며, 판정의 권위를 갖지 못했고 그 사실에 관해서 본인이 입증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그 판단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p.17
권위는 인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수용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권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권위를 유지하려는 사람도, 권위를 찾는 사람도 원하는 것은 합당한 인정입니다. 정당한 인정이 권위의 출발점인 것입니다.p.19
분당 사람들은 성남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판교 사람들은 분당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서판교는 판교라 하지 않고 반드시 서판교라 합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이라는 물리적 주소를 갖고 있지만 심리적 위계는 역순입니다. 가장 상위 서열에 서판교가 있다는 말이니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입니다.p.51
‘나는 노력했으니까 드러낼 수 있다’라는 인식이 바로 메리토크라시의 함정입니다.p.57
시대예보 : 호명사회
삶은 편리해지지만 편안해지지는 않습니다.p.31
시뮬레이션 과잉의 이유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욕망이 커진 것에 기인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세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식재료인 토마토를 던지며 축체를 벌이고, 어디선가는 새콤한 오렌지로 전투를 즐기기도 합니다.p.43
얼마나 많이 소비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치의 경쟁이 가상의 네트워크 위를 가득 채우며 내가 실제로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타인의 소비를 통해 더욱 허기짐을 느낍니다.p.44
이제는 평가가 ‘상사’에게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회사 밖의 수많은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유튜브로 성공해 유명해지거나 업무 지식을 책으로 발간하고 온라인 강연을 열어 명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사회와의 직거래를 통해 나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p.62
이제는 핵개인의 시대가 되어 ‘내 취미와 행복에 투자하는 시간’이라는 함수가 많은 사람들의 함수표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어떤 시대보다 더 많은 조건식이 들어옵니다. 이를테면 어학연수를 포함해서 유학과 해외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대폭 늘어나며 투자 대비 성과라는 조건식에 대한민국에서의 값만 입력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p.70
결혼 과정에서 느낀 후회와 원망이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전파되면 비혼이었던 이들은 그 의지가 더 단단해진다고 말기도 합니다. 정보를 다루는 데 익숙하고,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는 이렇게 불필요한 압력을 사방에서 받습니다.p.75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투자 비용, 성취 목표 달성의 어려움, 성취한 후에 장기적으로 얻게 될 효과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모두 투자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감정적 포기가 아니라 이성적 선택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달관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일 수 있습니다.p.79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너그러움’이 될 것입니다. 100가지 체크리스트에서 몇 개가 어긋나도 괜찮다는 이해, 그리고 누군가의 20점도 훌륭하다는 큰 품의 너그러움이 없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나서는 상태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100점 만점의 20점은 그 자체로도 멋진 성취이자 향후 더 나은 점수를 도모하는 훌륭한 출발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라도 시작은 중요합니다.p.80
개인의 성장은 모범사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을 통해 좌절하고 그 낙담 속에서 다시 일어서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절망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이 그의 성장에서 가장 주요한 촉매로 자리 잡습니다.p.85
상처와 회복으로부터 얻는 단단한 피부는 더 어려운 역경을 견뎌낼 갑옷이 됩니다. 오류 가능성을 제거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실제의 삶에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될 난관에서 필요한 면역의 형성을 억제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시뮬레이션 과잉이 주는 핵심적인 비극입니다. 비료에 의지하여 자란 식물이 자연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할 힘을 기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p.85
다시금 돌파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값을 찾는 일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400만개의 미래를 보고 오직 단 하나의 정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영화 속의 닥터스트레인지 뿐입니다. 영화 속 초능력자 히어로가 아닌 우리는 경쟁에 대한 압력과 우리를 둘러싼 불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p.94
지금 사회의 분위기는 누구나 루팡을 꿈꾸는 듯하지만, 동료가 루팡이면 화가 나는 이중적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가장 훌륭한 복지는 좋은 동료’라는 말들이 회자됩니다. 만약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두 루팡을 꿈꾼다면 그 조직은 누구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p.119
무엇보다 루팡은 방학 숙제를 못한 채 개학을 맞이하는 어린아이처럼 불안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상의 업무에서 실제의 가치를 형성하지 못하면 경험과 지적자산은 쌓이지 않습니다. 연공서열로 급여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그의 혜택은 강화됩니다. 하지만 일하지 않은 자가 쌓은 세칭 ‘물경력’은 환금되지 않기에 날이 갈수록 그의 이직은 어려워집니다. 여유로운 업무 시간에 ‘소득의 파이프라인’, ‘경제적 자유’, “N잡’ 등으로 본인의 안전함을 도모하려 해도 이 역시 녹록지 않음을 발견하며, 그는 조금씩 녹는 소금인형처럼 차오르는 시대의 변화 속 불안감을 채워나갑니다.p.122
‘이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라는 고백은 타인이 보기에 성취를 이룬 30대와 40대도 정체성 고민에 빠져 뱉어내는 토로입니다. 최적화의 경로를 잘 살아온 듯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기 삶에서 자아가 누락되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룬 이들 중에서도 작은 위험에도 동요하며 흔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설령 한시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남은 삶에서의 지속적 성취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이유이기도 합니다.p.130-131
“이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라는 깨달음은 그동안의 선택이 좁은 세계에서 이루어졌던 가치 판단에 기반했으며, 더욱이 외부 압력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자기 의심에서 비롯됩니다. 그 꿈의 출처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꿈일 수도, 선생님의 꿈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친구 부모의 꿈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또래 집단의 아이들이 동시에 꾼 꿈을 세대적으로 쫓아간 결과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p.133
마침내 성취의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그것이 자기 꿈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새로운 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을 때보다 자신이 갖고 있엇던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더 슬퍼집니다. 온전히 끝까지 가보지 않고 중간에 깨닫는 이들도 있고, 끝까지 가보고 나서도 타인의 욕망을 욕망했던 자신을 자각하는데 한참이 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 살고 모두가 읽던 위인전대로 꿈꾸던 시대는 점차 저물고, 이제껏 효율성과 최적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현상도 유효기간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p.133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냉철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의 감각과 역량을 면밀히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성찰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배제된 해결책’은 대부분 효과가 없습니다. 일상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시기일수록 모든 질문의 시작점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p.134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분야를 “좋아한다”라고 표현할 때 주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말합니다. 그 산업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창작에 참여해 본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때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로서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평가’라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과 전문적인 직업 사이의 큰 간극을 만듭니다.p.134-135
역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완전한 본업이 아닌 취미나 부업의 영역이라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조예를 쌓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영역을 ‘본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본진이란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여 경험을 쌓아가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열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어떻게 소모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의 싸움입니다.p.135
스스로를 증명코자 하는 이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자신만의 속도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술을 좋아한다면 지금부터 술을 배워 직접 만들어보거나 전통주를 만드는 술도가를 방문하고 애호인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며 누룩의 맛과 향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p.135
예전 우리의 롤모델은 한 학년 위 선배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넘어 전 세계 최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확장됩니다. 그의 성공 과정이 채널에 낱낱이 남아 있기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얻게 되고, 이내 ‘나도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다시 말해 ‘정보 과잉’이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을 극한으로 쏘아 올리게 한 것입니다.p.144
탐색 행위만 의미 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정보는 과잉되었고, 의지는 탈진되었습니다. 의지의 번아웃이 오면 정신은 피폐해집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넋이 나간 상태에서는 적어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p.146
과잉된 생각과 마비, 다시 새로운 탐색이 계속되는 무한 반복은 실행이 없기에 결과도 없는 영원히 지속되는 연옥과 같습니다. 이제 이를 끊어내고 각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각성은 불필요한 정보를 단절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첫 발을 내딛으려면 먼저 정해진 방향과 목적지를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의 엉거주춤한 자세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모르기에 무엇이든 준비한다는 불확실성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카오스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무엇이든 준비하다 무엇도 될 수 없다면 그 기댓값은 0에 수렴합니다.p.148
자신의 진정한 선택이 배제된 채 이루어지는 최적화는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더 멀리 가게 만드는 함정에 스스로를 빠지게 만듭니다. 모든 길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에야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인지가 더 명확히 보이며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p.148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심적 평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서로를 채근하고, 압력을 주고, 선을 넘으며 참견하는 일이 줄어든다면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 총량도 감소할 것입니다. 즉 자신의 본진을 고르고 그곳에만 매진하는 일이 언뜻 개별적 선택의 집합에 불과한 듯 해도, 전체 집단으로 보면 경쟁으로 인한 낭비가 없어지는 효율화에 도달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 하는 것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각자의 최적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p.148
N잡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잡job’인 ‘본진’이 있어야 한다느 사실입니다. ‘본진’이라 함은 순전히 직무 혹은 소득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리매김하는 고유 영역을 뜻합니다. 본진도 없이 곡예사처럼 N개의 일을 저글링하는 것과 같은 정체성의 기반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p.155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를 만들어보아야 합니다. 그 단어가 본업으로 인지될 수 있다면 정체성의 뿌리가 단단히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천 방법과 효용의 대상이 모두 존재해야 합니다.p.155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술이 좋아서 이걸 하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물어본다 해도 진지한 눈빛으로 전문성 있게 설명하고 추천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조예와 취향을 쌓으면 그것이 자신의 새로운 본진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이때 자신의 호오와 관련 있는 일을 찾아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트타임의 기회가 있을 때 바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자신의 조예와 취향이 버려질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자산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p.158
우리가 일하며 보내는 시간은 노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데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는 게 뭐 별 거냐”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일상의 마모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지만, 이때 가장 결여된 부분은 ‘삶의 의미’입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매일 8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동 사냥 모드’로 출근해 퇴근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매일 그만큼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 같다는 공포가 다가옵니다.p.159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발’이라는 단계가 아닌 ‘선언’이라는 행위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발로 거친 이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법’을 배우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 그보다는 ‘잘 사는 법’을 배워나가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꾸릴 것인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각자가 각성하게 될 것입니다.p.159
플랫폼으로 이룬 직거래를 그는 자기 고용이라 부릅니다. 모든 것을 작가 스스로 하는 자립의 시스템은 북적이는 도시에 그가 자리 잡을 이유를 없애주었습니다. 그는 지평선이 보이는 한적한 시골의 멋진 집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동생, 고양이 8마리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환경과 달리, 세계를 무대로 그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p.163
개인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이 재능이 현시대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심도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과정의 출발점은 개인의 ‘호오’, 즉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해입니다.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에서 비롯된 질문에서 본인이 더욱 잘할 수 있고 오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이는 자신에 맞는 ‘본업’을 발견하는 길이며, 무엇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p.165
진정 자신에게 맞는 업과 단단한 성취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매우 번거롭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절박한 길이 다른 여지 없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AI의 보편화가 이끄는 산업적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직업적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반대급부를 살펴보면 진화와 적응의 경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p.175
그 경로의 출발점은 고유성을 지닌 자신만의 무대입니다. 본진에서 깊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호오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과업을 찾으며, 숙련을 바탕으로 시간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은 무엇보다 자기자신에서 시작한 질문에서 시작해야합니다.p.176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는 일과 잠재적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다지는 일입니다. 기관은 설명의 친절함을 더하는 것뿐 아니라 시행착오의 두려움을 경감할 수 있도록 오류시의 구제 프로세스를 보완해야 합니다.p.193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질문을 구체화하는 힘’입니다. 전세권 설정의 출발은 ‘전세권’, ‘후순위’, ‘확정일자’, ‘전입신고’와 같은 복잡한 단어의 이해입니다. 이렇듯 규칙과 제도는 수많은 예외사항과 고려해야할 변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p.193
자신이 해야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질문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문제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출발점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직면한 한계를 자각하며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질문의 범위는 때로는 넓어지고 다시 때로는 좁혀지기를 반복합니다.p.193-194
개인의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자기 사업을 꿈 꿀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금부터 단골을 만들어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손님이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면 어떤 것이라도 구매하고 싶어합니다. 이렇듯 자신과 그의 관계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그 관계 형성의 과정을 건너뛰면 안 됩니다.p.204
‘내’가 바쁘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손님을 많이 받아서 바빠진 것이라면 자신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을 늘리거나 수용할 수 있는 고객 수를 줄여야 합니다. 손님이 많아지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홀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p.204
무엇인가를 학교에서 먼저 배운 후 삶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삶 속에서 배우며 적응하는 것이 21세기의 생존법임을 이해한다면 출신학교를 명시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유효기간을 다했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p.213
그리고 이 모든 적응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한 사람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부 모임은 스승이 없는 도반들끼리의 모임이 됩니다. 필요한 분야에서 먼저 깨달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스승을 한 명으로 한정하지 않고 배움을 익힌 후 다시 다른 스승을 모십니다. 지혜의 원천이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모든 이들에게 쌓인 지혜가 집적되어 만들어집니다. 이제 스승은 우리 모두일 수 있으며 학생 역시 우리 모두가 되어갑니다.p.214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p.215
깊은 사고를 한 이가 자신의 고민을 언어로 정제하여 보낸 메시지에 공감한 이들이 함께 모여 저자에게 화답하며 다시 생각을 더욱 발전시킬 때 도반의 주파수는 조화를 이룹니다. 그 어우러짐은 주어진 환경에서 우연히 엮인 네트워크를 자신을 한정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대변합니다. 핵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듯 자신을 둘러싼 네트워크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자 합니다. 그 기점을 생각의 정수가 집약된 ‘책’에서 찾는 것입니다.p.215
자신의 의지로 연결된 대등한 네트워크는 ‘연대’로 누군가의 불안으로 강제된 속박의 네트워크는 ‘연좌’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대등함이 연대의 출발이라면 유머의 소재로 자주 언급되는 ‘조별 과제의 비극’은 연좌에 해당합니다.p.224
“이거 배우면 돈 벌 수 있어요”라는 말은 “그걸 배워서 돈을 벌기 위해 먼저 돈을 내세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시장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배움의 과정이 어려워 쉽게 마칠 수 없어야만 참여자가 누릴 이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배움의 과정이 수월해 끝까지 이수하는 것이 순조롭다면 그 분야는 돈이 되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원활한 일에는 새로이 100만명이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쉽기만 한 일로 부가가치를 낼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의 직업이 어렵기 때문에 당신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p.233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단골입니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으면 반복 구매가 생존의 필수가 됩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뜨내기손님만으로 영업이 유지되기에 친절과 가성비가 선택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매번 새 손님이 온다면 번화가의 국밥집이 반드시 친절해야 할 필요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평판이 공유되는 세상이 오며 모든 이에게 단골은 선택을 넘어 필수의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p.251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을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 아닌 구체적인 일상의 한 장면으로 표현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모든 것을 홀로 하기를 선택하는 이유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당신과 밥을 먹는 것보다 혼자 먹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피곤한 사람과 같이 무언가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 하겠다는 차선책이라는 것입니다.p.258
내가 교류해 온 사람들의 교집합이 곧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긴 글이 ‘나’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들이 ‘나’입니다. 내가 남긴 나의 모든 흔적이 바로 ‘나’입니다. 그 자료들을 통해 ‘나’의 안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정보의 과잉으로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떼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머릿속 시도만으로 지쳐서 한 발짝도 못 내딛던 각자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서 첫걸음을 걷고자 할 때, 그 방향이 밖이 아닌 ‘나’로 향함을 알 수 있습니다.p.292
이제 새로운 지식인이 갖춰야할 덕목은 미리 저장된 지식을 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탐색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암기력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을 파악하고, 현명한 질문을 하며, 그 결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p.312
작가는 주간 보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을 파는 이는 그 과정 속 밀도의 충실함을 증명해야 하지만 작품으로 증거하는 이에게 과정의 점검은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