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라야마의 세계에서 고유한 아비투스(Habitus)
- 음악
- 소설
- 식물
- 청소
- 술집
- 빛
1. 히라야마의 음악
그의 차에 탄 사람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문화자본에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조카가 언급한 스포티파이처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히라야마는 감아야만 다시 들을 수 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선호한다.
히라야마의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는 그의 카세트 테이프를 오직 여자친구 아야를 위해 사용한다. 그의 오토바이가 고장나서 히라야마의 차를 빌려 탔을 때도 히라야마의 카세트 테이프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친구 아야의 가방에 몰래 넣는다거나, 이후 여자친구와 만날 돈이 부족해 히라야마의 테이프를 판매하려고 그를 테이프 중고가게에 데려가기도 한다. (이때 그가 가지고 있는 카세트 테이프가 굉장히 높은 값을 받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포티파이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 수 있는 조카 니코에게 삼촌의 음악은 낯설면서 신비롭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 언제나 들을 수 있지만 좋은 음악을 찾기 위해서는 스포티파이라는 바다 속에서 진주를 찾아야한다. 반면 히라야마는 바다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본인만의 작은 호수 속에서 음악을 즐긴다.
2. 히라야마의 소설
조카 니코는 엄마와 싸우고 삼촌 히라야마를 찾아왔다. 이때 엄마가 가출한 니코를 찾아왔을 때, 니코는 본인이 여기 있다고 연락한 삼촌에게 서운한 나머지 단편소설 ‘테라핀’에 나오는 소년 빅터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빅터는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를 칼로 살해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말하는 조카 니코를 두고 삼촌 히라야마는 그렇게 안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히라야마 본인이 빅터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살아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살해를 했다는 뜻은 아니고, 부모와의 갈등)

정신이 온전치 않지만 요양원에 방문해서 아버지를 뵈면 어떠냐는 여동생(조카 니코의 엄마)에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부유한 아버지와 심각한 불화 끝에 가족과 절연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영화 속 모습으로 살고 있다. (어떤 불화인지 영화 속에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오빠 정말 화장실 청소일을 하고 있어?’라는 여동생의 물음에서 그는 원래부터 청소일을 해오던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듣는 음악, 그가 읽는 책, 사진을 찍는 취미 등은 화장실 청소부가 가질 수 있는 흔한 취미가 아님을 영화는 비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히라야마의 식물
히라야마는 이웃집 할머니가 길거리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소리를 듣고 늘 잠에서 깬다. 그때부터 히라야마는 이부자리를 개고 전날 읽다 만 책과 안경을 정리하고, 밤새 자란 수염과 고이 모셔둔 식물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식물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은 집안에 식물들을 둔 방에 식물의 성장을 돕는 보라색의 식물등을 따로 설치해두었다는 사실이다. 매일 신사의 공원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식물에 대한 애정을 선사한다. 그 과정 중에 작은 식물을 집으로 모셔오기도 한다.

식물을 한 번이라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살아있는 식물을 계속해서 성장시킨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웬만한 애정으로는 이어올 수 없는 취미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짐이 될 취미가 될 확률이 높은데, 히라야마에게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고유한 취미일 뿐이다.
4. 히라야마의 청소
그가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청소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만큼 청소에 진심이다. 동료 청소부 타카시는 매번 출근시간에 늦으며, 스마트폰을 보면서 건성으로 청소를 하는 태도에서도 그가 청소라는 업에 대해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반면 히라야마는 작은 티끌 하나도 닦아내기에 진심이다. ‘어차피 더러워질텐데’라는 타카시의 물음에 직접 청소도구를 개발하면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먼지를 닦아내며 말 대신 행동으로 답한다.
그가 청소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다. 스스로에게만 괜찮은 사람이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덩달아 나도 청소를 하고 싶을 수 밖에. 다가오는 주말에는 조금 더 일상 속 먼지를 잘 훔쳐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 히라야마의 술집
청소일을 마치고 나면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풀어두었던 시계를 차며 외출한다. 샤워를 할 수도, 빨래를 돌릴 수도 없는 작은 집이지만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며 동네 목욕탕에 들러 몸에 쌓인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내며 두번째 하루를 시작한다. 코인세탁방에 들러 빨래를 돌릴 땐 세탁물과 함께 가져온 책 한 권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영화 <패터슨> 속 패터슨이 본인의 개 ‘마빈’과 산책을 하며 마지막에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듯,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 또한 자주 찾는 선술집에 찾아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영화 속에서는 그가 자주 방문하는 여러 술집들을 보여주는데, 모든 술집 주인들이 그를 살갑게 반기는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휴일에 가는 선술집 여주인 마마에게는 서로 애틋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기도 한다.
6. 히라야마의 빛
히라야마는 출근할 때면 전날 충전해둔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왼쪽 가슴 포켓에 넣어둔다. 그리고 늘 밥을 먹기 전에 나무들이 포개져 빛이 일렁이는 풍경을 찍곤 하는데 영화에서 감독이 강조하고 싶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코모레비’와 일치한다. 코모레비는 히라야마가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보여주는 그의 삶의 철학과 비슷하다.
바다를 구경하고 싶다는 조카의 물음에 다음이라고 말하자. 조카가 다음이 언제냐고 묻자.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는 데, 지금은 본인이 살고 있는 작은 호수를 지키기도 버거워, 큰 바다로 나아갈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진 호수가 있는 이 곳에 존재하고 싶다는 히라야마의 생각이 투영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빛이 일렁이는 순간들을 줌인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이는 말수도 거의 없고 표정도 없는 히라야마가 유일하게 웃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필름카메라로 늘 일렁이는 빛만 찍던 히라야마는 딱 한 번 조카의 모습을 찍는데, 처음 조카가 가출해서 찾아왔을 때 너무 큰 나머지 알아보지 못한 죄책감에 지금 이 순간의 조카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굉장히 좋은 영화를 봤다. 아래는 영화 속 사운드 트랙.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두 번 관람했다. 아래 브런치는 처음 보고 쓴 리뷰. 이 글은 두번째 보고 쓴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