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국내 장이 마감되면 주식 앱을 끈다.
숫자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번 이 시간이면 묘한 갈증이 찾아온다. 통장은 분명 두둑해졌는데 어딘가 허기진 느낌. 그 정체를 한참 동안 알지 못했다.
삶의 궤도가 흔들린다 싶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요즘 내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내 삶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나침반이다.
돌아보면 삶이 꽤 만족스러웠던 시절에는 늘 머릿속이 분주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서 치열하게 부딪히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매일 무언가를 집어넣고 그걸 다시 내 언어로 꺼내는 일은 솔직히 고된 노동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늘 한 뼘쯤 나아갔다는 효능감이 남았다. 방향이 있었고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나아가는 것보다 나아지는 것에 더 매달려 있었다.
얼마 전, 8년간 Workflowy에 쌓아온 생각의 궤적을 전부 Claude에 밀어 넣어 봤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삶의 노선은 정확히 2023년을 기점으로 창작에서 수익으로 갈아타 있었다.
자산을 불리고,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목표를 다시 세우고,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호가창과 차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삶. 덕분에 통장의 숫자는 불었고, 삶의 외형도 전보다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시간 내내 나는 시장에 저당 잡혀 있고, 얻는 날의 기쁨과 잃는 날의 슬픔이 수시로 드나든다. 차라리 지수에 묻어두고 일상에 전념하고 싶지만, 내 기준에 큰돈이 들어가면 그게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매일 저녁 찾아오던 그 갈증의 정체를, 나는 8년 치 데이터 앞에서야 겨우 붙잡았다. 나아지는 데 골몰하느라, 나아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놓친 걸 알아차리는 일과 그걸 다시 삶의 습관으로 붙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걸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말은 역설적으로 내가 지금 그걸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해야 한다는 마음은 고스란히 부채로 쌓인다. 그리고 그 부채는 책상에 앉기도 전에 머리부터 짓누른다.
하루 종일 시장의 파도에 휩쓸려 방전된 채로 다시 글을 쓰라는 건, 어쩌면 엔진에 과부하를 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아진 조건 위에서 다시 나아가기 위해,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다시 그 두 가지 질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의 배치를 단숨에 바꿀 순 없다. 평일의 대부분은 여전히 시장에 머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흡수하는 정보와 인용하는 말의 질만 아주 살짝 비틀어보면 어떨까.
시장의 소음과 자극적인 리포트 대신, 투자 대가의 문장 한 줄을 머릿속에 넣고 장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장이 끝난 저녁 8시, 손익의 숫자 대신 오늘 시장을 보며 느낀 내 심리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딱 세 줄로 꺼내 보는 것.
수익 활동을 창작의 재료로 바꾸기. 돈을 버는 행위 안에 나만의 철학을 세우는 시간을 슬며시 스며들게 하기.
부채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2023년 이후의 몰입 덕분에 나는 더 멀리 나아갈 단단한 발판을 마련했으니까.
이제는 그 발판 위에서, 고이지 않기 위해 아주 작은 인출의 습관 하나를 시작할 때다.
오늘 저녁 8시에는, 숫자 대신 세 줄을 남겨봐야겠다.